On the grind, Chapter 4

이보다 바빴던 적은 참 많은데, 이보다 감당이 안되었던 적은 없었다.
이제 좀 정체기가 지나고 시작을 할 수 있겠구나, 결심이 섰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복잡함은 처음이다. 패닉도 아니고, 번아웃도 아닌, 고민과 걱정도 아닌, 말 그대로 막연한 불안감.
얼마 전 글쓰기 수업에서 나에 대한 에세이를 쓸 때, 나 자신을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냥 하는 것은 없다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누구보다도 이 상황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정말 빠르게 진행되는 팀 프로젝트에서 조금 딴청을 부렸을 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하는 느낌을 최소한 나 자신에게 느끼기 싫었다.
이건 그런 느낌이 아니다. 선택과 집중에 실패했는가, 아니다. 욕심과 이상이 허무맹랑하게 큰가, 그것도 아니다. 상황에 압도당하다 못해, 휘감겨 쭈굴쭈굴해진 형상이 그려진다.
가장 큰 응원을 받아야 될 것만 같은 존재들에게 받는, 기저에 깔린 무시와 안타까움에서 오는 <그냥 하지 마>는 겉으로는 증오를 만들어내지만, 사실은 오히려 긴장은 키우고 기세는 죽인다.
툭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이 무거운 마음을 매일 같이 들고 다니다, 주객이 전도되어 그것에 처참히 밟힌다. 사람들을 만날 때, 점점 페이드 아웃되는 영화 속 장면처럼 현실에서 멀어지면서 집중이 어려운, 괜찮은 척이 어려운.
테라피를 고민해 봤다. 갈지를 고민한 지는 꽤 되었다. 가려고 마음을 먹으면 일상인지, 뭔지가 반창고처럼 임시방편으로 붙어, 또 넘어간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가서 입을 열기 조차 싫어.
등이 떠밀려 내일은 가보려고.
그것을 안 믿는 건 아닌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 일기장이다 보니, 짧게만 짚고 넘어가자면, 그간의 열씸들을 모아보니 꽤나 큰 뿌듯이 되어 있었다. 그때는 실패라고 여겨졌던 선택들과, 부질없어 보이던 노력들이 배송비 무료 같은 쿠폰으로 어라?를 안겨주면서,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걸 다시 느낀다.
최근에는 환상에 젖어 너에게 날아가려고 했어. 그리고 더 조금 전에는 너는 신경도 안쓸 실수를 했어.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어. Delulu i can’t control her. 매번 하는 생각인 거 같지만 다시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 거 같아. 아니면 지금의 내가 너를 들일 공간이 없어서일 것도 같고. 너인지, 너와 나눈 공기였는지, 너의 앞에 있던 나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에 감히 사랑에 빠졌다고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때까지도 그것을 그 시간에 가두지 못할까 봐 걱정 돼. 아주아주아주아주 작은 신남이 있을 것도 알겠지만.
너가 그랬잖아, 나는 친절한 걸 못 견딘다고. 너는 꽃을 사다 줄 simp에서 가장 먼 극단에 있지만, 나를 아낀다고. 그런데 요 직전에는 꽃을 사다 줄 사람이 못되어서 떠나보냈어. 아무리 생각해도 기약이 없는 너에게 내가 걸 기대는 없다고 느껴져. 그런데도 아침에 와 있는 부재중 전화가 싫진 않더라. 너의 따듯한 마음과 얼굴이 일그러질 만큼 유독한 너의 생각이 부딪히면서 너라는 환상을 만들어 내.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지금은 지쳐있을 수밖에 없다. 굉장히 너에, 상황에, 끌려가는 것 같지만, 뭐 언제는 안 그랬나. 그러다 보면 점점 무덤덤 해지겠지. 그동안 간간히 통제를 잃는 상황이 오면 어때. 그 정도는 너가 감당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걸 즐겨준다면 더 좋겠다.
요즘은 상대방들의 말을 곱씹어 보며, 내가 그 정도의 존재였나 싶어. 그걸 훨씬 뛰어넘는 인상의 너지만, 너에게도 내가 그 정도의 기억과 존재인 이유가 납득은 가도.. 음. 여유가 부족해지면서, 너가 떠오르는 시간과 횟수가 줄어. 이런 끝도 싫었는데, 마음에 드는 끝은 있었을까.
2024.07.23 12:46 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