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일기장

Out of comfort zone, Chapter 8

마틸다 Matilda 2023. 12. 6. 17:01


  벌써부터 모든 것을 그리워하기 싫은데. 좋은 순간일수록, 언젠간 이 시간이 끝나 회상을 하고 있을 걱정을 미리 사서 하는 습관을 버릴 수가 없다. 몇 년 전쯤 엄마와 일본 디즈니 랜드에 갔었다. 정신없이 거미줄을 쏘아대는 스파이더맨 놀이기구를 타면서도 나는 스파이더맨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와 단둘이 보내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벌써부터 이 순간을 그리워할 미래가 떠올라 기분이 확 우울해졌다. 정확히는 좋은 상태가 끝날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지금을 돌아보며 그때 참 좋았었지,라고 회상할 것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울컥한다.

  최근에는 친구들과 카페에서 같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작별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사실 벌써부터 작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점점 그에 대한 걱정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애착’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며칠간 도시를 떠나 있으면서 학교에 남아있는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어 페이스타임을 거는 나를 보며, 이들이 나에게 편안한 집과 같은 존재로 인식됨을 알아차렸다. MBA 시절 같은 조원이었던 다른 나라 친구와 몇 십 년째 우정을 다지고 있는 아빠처럼, 이들과 오래 함께할 인연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나누는 몇 개월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들과 언제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가 나누는 공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공기가 이십 대 초반의 찬란한 순간들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을 알기에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진다.

  정을 붙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던 그 관계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크게 없어 보인다. 내 침대에 눕는 게 어색할 만큼 버릇처럼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던 아늑한 날들은 경계심을 흐렸다. 애착이 생기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는 우리를 보고 나는 지레 겁을 먹어버렸다. 내가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날, 네가 필요해서 너에게 달려간 그날, 너는 더 안 좋은 일로 나를 필요로 했고, 나에게 기대는 너를 보며 그 어떤 상태의 너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항상 그렇게 강하던 눈빛이 초점을 잃어 끊었던 담배를 연거푸 무는 그의 곁을 떠나기 싫었다. 그를 깊이 신경 쓰는 것은 맞지만, 사실 그를 미워하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그렇게 그를 마주할 때면 머리로는 네가 그렇지 뭐,라고 하면서도 꼭 붙든 그의 품 속에서 더 많은 감각들과 함께 안정감을 다시 느꼈다. 나도 모르게 생긴 상처에 다른 ‘우리’가 생겼냐며 화를 내는 모습도, 내 몸을 해치는 것은 두고 못 보는 모습도, 내가 갠 빨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죄다 다시 개는 모습도, 오랜만에 방을 치웠다며 자랑하는 모습도, 함께 여행을 제안하는 모습도, 절대 그에게서 나올 수 없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기에 날카로웠던 마음들이 다시 주저앉는다.

  어제는 주변에 선물할 크리스마스 카드를 고르다, 아무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없고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그와의 작별을 떠올리곤 이 모든 것이 참 바보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정말 바보 같아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을 생각하면 이 순간마저 그리워진다.

2023.11.22 3:57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