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은 특별한 전개방식의 전기이자 에세이를 읽었다. 자신을 끊임없이 믿으며, 목표를 추구하는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그린 이 책은, 그가 일생을 바쳐 쌓아 온 분류학의 다크한 이면을 드러낸다. 살면서 '분류'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하겠나 싶겠지만, 이 작은 불씨가 가져오는 어마어마한 산불 수준의 결과를 알게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인간은 순수를 혐오하는 자연을 역행하고, 다양성을 죽이며 질서정연함을 추구한다는 최재천 교수의 강연을 들은 기억이 난다. 분류된 카테고리에 자신을 끼워 맞춰 소속감을 느끼기도 하고, 특성을 표현하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MBTI로 본인들을 소개하고, 서로를 비교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모든 분류에는 회색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같은 카테고리에 속한 개체들 사이에도 조금씩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는 스펙트럼을 만들어낸다. 굳이 MBTI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면, 사람들마다 각 유형의 비율이 다르듯이 말이다. 그 스펙트럼을 구간별로 나누어 편의상 부르는 용어들을 만들어낸 것이 분류이다.
그 연속선상을 싹둑싹둑 자르는 기준은 인간의 직관인 경우가 많고, 책에서는 그 직관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스포일러) 반짝거리는 얇은 비닐들로 싸인 물고기, 어류라는 종이 사실 없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어류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은 개체들 사이의 공통점은 비닐 말고는 거의 희박하다고 한다. 비닐 아래의 다른 속성들에 대한 깊은 관찰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겉으로 가장 잘 보이는 특징에 눈이 멀어 다른 가능성들을 배제한 불찰이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특징들을 잡아내는 것을 통찰력이자 인사이트라고 부른다면, 그것의 의미는 점점 커지고 있다. 무려 인간의 시각을 뛰어넘는 비지도 학습까지 동원되고 있는 요즘이니 말이다.
분류가 단순함을 위해 스펙트럼을 자르는 행위라면, 인간이 함부로 직관을 이용하여 분류라는 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작가는 던진다. 그저 특징들을 나누고 이름을 붙이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조던의 분류, 우생학은 큰 파급효과를 불러왔다. 처음부터 그가 우생학을 꺼낸 것은 아니었다. 휘몰아치는 자연재해 속 무력한 인간에 불과한 조던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부정하기 위해 '운명의 형태는 인간의 의지가 결정한다'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마음속에 심었다. 사실 이 전제는, 모든 것이 결정된 유전학을 다루는 분류학의 관점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자기기만이었다. 그러한 시각으로 자연을 바라본 조던은 자신이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생물들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인간'을 분류하는 우생학으로 이어졌다. 분류의 객체로써의 인간들과 주체인 본인을 분리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를 선택적으로 부여하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이었다. 매우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정상이다. 나 자신에게 나는 특별한 존재임이 틀림없지만, 그것이 다른 개체들과의 위계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인간, 그리고 자연까지 상생의 가치가 더 커지고 있는 요즘일수록 말이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지는 작은 관념이라도 주변에 끼칠 수 있는 영향들에 대한 숙고가 필요함을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