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일기장

Francesca

마틸다 Matilda 2023. 8. 12. 17:26

   
   감정 앞에 이토록 나약해질 수 있었던가. 그것은 몇 년간을 꿈꿔 온 지금을 한 순간에 후회하고 부정하게 했다. 더 농도가 짙을수록 더 오래 쇠할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마 어리석음보단 진실됨 때문일 것이다. 너무 기진한 나머지 그 반대를 갈망하다가도 다시 한순간에 되돌아오게 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시작한 그것을, 비에 쫄딱 젖은 생쥐꼴이 될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잠에 들지 못할 때 양을 세는 것처럼, 늘어지는 시간 속에서 날카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세고 있다가 문뜩 알아챘다. 희망과 낙담의 줄다리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쪽으로 기울고 있던 참, 혹은 그렇게 믿고 있던 참에 상황은 이렇게 될 줄 몰랐냐는 듯 줄을 잘라 양쪽 모두를 쓰러트린다. 무엇을 원하냐는 질문에, 어떤 시나리오보다는 그 녹아버리는 해 질 녘 같은 향이면 충분할 거 같음을 느꼈다. 어떤 결말도 의미가 없어진 지금, 선택지는 사라지고 감정들은 남아 피카소의 기괴한 초상화처럼 복잡한 표정들을 만들어 낸다. 다시 그것들에 압도당하지만 선택이 아니었기에 후회할 수 없다. 역설적이게 그것에 감사해하기도 한다. 양볼에 뜨거운 것은 마냥 슬픔과 아쉬움 때문이 아니다. 돌아오는 따듯한 시선이, 어깨의 온기가, 진심 어린 관심이 아직도 선하기에 그것들로 만들어 내는 허상들에서 비롯된다. 밤마다 버릇처럼 바라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그것들은 한편 두려움을 빚어낸다.

  그녀라면 너무 사적이라며 이불을 뻥뻥 찰테지만, 또 공감을 더하며 귀를 기울여줄 그 마음에 다시 시선을 보내게 된다.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의 아늑한 밤과 좋은 꿈을, 그리고 심상한 내일을 기도하며 눈을 감아요.
 
2023.08.06 01:2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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